프라우엔키르헤가 보이는 드레스덴
프라우엔키르헤가 보이는 드레스덴 ©imago/VIADATA
루트 4 – 라이프치히에서 드레스덴으로
Luther 2017

500 years since the Reformation

루트 4 "정치와 반란"

사방에서 마틴 루터를 공격하였고, 그는 분노했습니다. 주교뿐만 아니라 교회의 다른 고위 성직자들도 루터의 개혁 작업을 반대하였고, 선제후들도 그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는 불복종이라고 여겼습니다. 루트 4는 루터가 그의 전투를 밀고 나아가 마침내 관철해 낸 가장 중요한 곳 가운데 몇 군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519년에라이프치히에서 벌어진 종교 논쟁에서 루터는 가톨릭 신학자 요하네스 에크와 격렬한 토론을 하였습니다. 가톨릭 교리와 개신교 교리 사이의 차이가 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논쟁이 “무승부”로 끝나자 루터는 로마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훨씬 시간이 지난 1539년에야 비로소 루터는 다시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비텐베르크는 95개조 반박문이 게시되었던 곳입니다. 비텐바르크 이외에도 토르가우가 종교개혁의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이곳에 개신교 최초의 교회가 건립되었습니다. 토르가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뮐베르크가 있고 그곳에는 마리엔슈타인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 안에 위치한 종교개혁 박물관은 개신교 지지 세력의 슈말칼덴 동맹이 1547년 카를 5세의 군대에 의해 와해된 사건을 다룹니다.

1517년 위터보그에서는 요한 테첼이 면죄부를 판매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의 행동이 루터가 95개조를 내걸게 만든 계기가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1519년에는 “위테보그 설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토마스 뮌처와 위테보그의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이 거기에 가담했고, 멜란히톤의 도움을 받아 선제후들에게 아우그스부르크 종교회의를 구현할 방안에 관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이 역사를 체험하려면 묀헨 수도원 내의 박물관, 상트 니콜라이 교회를 방문하거나 또는 위테보그와 비텐베르크 사이의 루터-테첼 도로를 탐방해보세요.

훗날 루터의 부인이 된 카타리나 폰 보라는 그림마의 님쉔 수녀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이곳은 오늘날 폐허가 되었지만 여전히 볼 가치가 있습니다. 츠비카우의 막스 페히슈타인 박물관은 2015/2016 시즌에 “개혁과 혁명 – 새로움으로의 길”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그리고 드레스덴에서 이 루트는 장엄하게 끝나게 됩니다. 개신교 건물로서 유럽에서 가장 큰 원형 지붕을 갖고 있는 프라우엔 교회가 그곳에 있습니다. 그 앞에는 인상적인 모습의 루터 동상이 서 있으며, 신시가지에 있는 신고딕 양식의 마틴 루터 교회도 한 번쯤 찾아가 볼만합니다. 또한 유명한 녹색 둥근 천장은 꼭 보아야 합니다. 이곳에는 루터의 인장 반지와 술잔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정보

드레스덴은 도시의 아름다움, 박물관, 크리스트 슈톨렌뿐만 아니라 독일 및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 합창단 중 하나인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이 유명합니다. 700년 이전부터 크로이츠 교회가 이 합창단의 문화적 본거지가 되었으며, 1739년 이곳에서의 첫 번째 개신교 예배 중 합창을 한 이래로, 예배, 저녁 예배 및 콘서트는 드레스덴 문화 일정에 항상 포함되고 있습니다.

루트 정보

길이: 약 400km

출발지: 라이프치히

목적지: 드레스덴

경유지: 라이프치히, 비텐베르크, 위테보그, 토르가우, 뮐베르크, 그림마, 리스니히, 로흘리츠, 츠비카우, 드레스덴

도착

공항: 라이프치히-할레, 드레스덴

ICE 기차역: 라이프치히, 비텐베르크, 드레스덴

접근성 컨트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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